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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 영화가 12월 12일 700만 명 누적 관객수를 넘어 앞으로 천만관객을 동원할 것 같은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 영화로 1979년 12.12 사태를 다루고 있어 영화 속 실존인물과 배우들의 작명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 포스터

서울의 봄 소개

서울의 봄은 군사 반란이 일어난 1979년 12월 12일 저녁 7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의 9시간을 영화 141분에 담았습니다. 영화에서는 반란군과 지압군의 이름을 조금씩 변경하였는데 영화와 역사가 완벽히 일치하지 않고 각색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황정민 배우가 연기한 전두광 역은 외모의 싱크로율이 매우 놀랍도록 닮았고, 역사가 스포일러임에도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캐스팅

배우 역할 실제인물
황정민 전두광(보안사령관) 전두환(11, 12대 대통령)
박해준 노태건(9사단장) 노태우(13대 대통령)
정동환 최한규(대통령) 최규하(10대 대통령)
이성민 정상호(육군참모총장) 정승화(22대 육군참모총장)
김의성 오국상(국방부장관) 노재현(21대 국방부 장관)
정우성 이태신(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7대 수도경비사령관)

정우성이 맡은 이태신역의 장태완 장군은 영화와 달리 실존 인물의 성격은 더 불같은 성격을 가졌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여주었는데 홀로 끝까지 나라를 지켰다는 의미에서 이순신과 장태완의 '태'자를 합쳐서 이태신이라는 이름을 짓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제7대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출처: 나무위키)

 

서울의 봄 줄거리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될때 경호실장 차지철도 사망하고,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 김재규는 체포되었습니다. 전두광은 군대 내의 국정원이라고 할 수 있는 보안사령관으로서 10.26 사건을 수사하는 합동수사본부장이 되었습니다.

 

대통령 경호실장 권한대행은 하나회 소속이었고, 중앙정보부는 무력화된데다가 검찰과 경찰도 보안사로 불러들여 협조하지 않으면 체포해 버리겠다고 협박하여 대한민국의 모든 정보기관과 수사기관들이 보안사에게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육사 11기들이 만들어낸 하나회가 박정희의 후원으로 군내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통신망은 아날로그 방식이라서 교환기에 전선을 연결하면 도청이 가능해서 보안사는 육군전체를 도청할 수 있었습니다.

 

이날 전체장교 450명 중 390명이 반란군에 가담을 했고, 장태완 사령관의 수도경비사령부 400여명의 병력 중 300여 명이 반란군에 가담했습니다. 반란군이 본부로 사용한 경복궁 30 경비단이 수경사 휘하 부대였는데 장태완의 직속 부하인 장세동 역시 하나회 멤버였습니다. 그래서 장태완 사령관이 취사병, 행정병까지 끌어 모아도 100여 명의 병력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보안사를 견제할 정보기관과 수사기관들이 다 마비된 상태에서 보안사는 도청을 통한 정보수집과 하나회를 통해 군조직을 장악했음에도 쿠데타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진압군 측에서 나이브하게 신사협정에 응하는 부분을 보면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는데 이당시 육군본부의 장군들은 6.25 전쟁을 치르고 월남전에 파병을 갔다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1975년 전까지만해도 북한이 남한보다 잘살았기 때문에 북한이 쳐들어 올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컸었고, 남한에서 내전이 벌어지면 북한이 쳐들어 올 것을 매우 우려했었습니다. 보안사가 통신망을 장악했기 때문에 진압군은 뒤통수를 칠 수 없었던 반면에 반란군은 뒤통수를 치더라도 진압군은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이영화의 칭찬할 부분은 도입부부터 결말까지 극의 긴장감을 계속 유지했다는 점입니다.  최규하가 재가 사인을 한 뒤에 (기록물에는 am 5: 10분이 지워져있다. 신 군부 측에서 지운 것으로 추정) 선체포 후승인이라는 걸 기록에 남기기 위해 새벽 5시 10분을 적어 넣는 부분은 실제로 박수가 나올려는 것을 꾹 참았습니다.

 

 군 내 사조직을 총동원하여 최전선의 전방부대까지 서울로 불러들여 권력에 눈이 먼 전두광의 반란군과 나라를 지키려는 신념을 가진 진압군의 팽팽한 대립을 다룬 서울의 봄은 결말을 알면서도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 몇줄을 입체감 있게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쿠키영상 

1979년 12월 14일 하나회 기념사진

서울의 봄 영화의 쿠키영상은 없지만 쿠키사진 2장이 교차로 바뀌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역사를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에게 역사를 잊으면 안 되겠다는 경각심을 주었던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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